2008년 11월 1일 토요일

민주주의의 절차보다는 정치참여를 고민할 때

인류의 역사에서 사회적 집단 또는 사회적 공동체가 발생한 이후, 그 집단 구성원 사이의 이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이며, 어떻게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었다. 플라톤의 철인왕정론과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홉스·로크·루소 등이 주장한 사회계약설 등이 그런 사회체제에 대한 고민 끝에 나온 지적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많은 국민국가는 그러한 정치체제 중 ‘민주주의’를 택해 국가를 형성하고, 발전시켜오고 있다. 대한민국도 헌법 제1조에서 천명하듯 민주주의를 채택한 ‘민주공화국’이다. 그렇다면, 왜 세계의 여러 나라는 민주주의를 택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민주주의가 가진 특성, 즉 민주주의는 전체 구성원의 의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많은 현대 국가에서는 그러한 민주주의의 다원적 특성이 사회 내에서 인간의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기초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제도’라는 것이다. 제도는 사회의 구성원 사이의 가치체제를 바탕을 두고 형성되는 복합적인 사회규범의 체계라 할 수 있으므로, 사회 구성원이 어떤 가치를 갖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제도의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제 민주주의와 같은, 단순히 어떠한 정치 형태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구현하는데 더 적합한가에 대한 논쟁은 그 제도 자체의 결함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중우정치의 위험성과 다수결의 횡포와 같은 민주주의가 제도로써 사회에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결함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제도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민주주의 역시 그 자체가 가진 결함으로 독일의 나치즘처럼 후퇴할 수도 있다. 또한, 한국사회가 민주주의가 내용적으로 발전하도록 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여 장년층과 노년층 중 일부는 권위주의 정부가 민주화 이후의 정부보다 나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따라서, 제도에 대한 논쟁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은 민주적 가치를 지키고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민주주의가 갖는 결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상반기에 있었던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시장 개방으로 빚어진 촛불시위는 민주주의 제도가 자리 잡은지 이제 20년을 넘긴 한국사회에서 그런 고민을 대중의 수준에서 공론화시키고 초보적 수준일지라도 그 대안을 마련한 거의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쇠고기 파동이 일자 사회가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적이지 않을 때 어떻게 민주적으로 의사표시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이를 정치에 어떻게 반영시킬 것인가에 대해 논쟁했다. 그리고 그러한 논쟁의 결과를 평화적 촛불시위라는 형태로 보여주었으며, 그로써 일정 정도의 정치적 성과도 거뒀다.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사회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왜 인류가 민주주의를 택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결과,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참여의식과 신념, 용기를 가지고,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출할 때만이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 정의이며, 이를 민주적으로 실현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고민의 산물만이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는 실제적인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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