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8일 토요일

평화에 대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탈피해야 한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역사학자이면서 정치이론가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 Machiavelli)는 <군주론>이란 책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책에서 군주가 이미 이루어진 현실을 버리고 이루어져야 할 이상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보존하기는커녕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그는 정치에서의 현실주의(realism)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후세에 정치적 현실주의의 사상적 아버지로 칭송받게 된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관념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나 탁상공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를 수용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군대의 폭력성과 존폐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훈련소에서 신념상 집총을 거부하는 자와 지난 국군의 날 행사에서 군대 폐지 퍼포먼스를 보여준 대학생 강의석씨를 비롯한 평화주의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행동은 군대를 통해 전쟁억제력을 갖춰야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현실을 무시한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며 비난한다.

그렇다면, 그 현실이라는 것은 수용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역사는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인류의 대다수는 문명이 태동한 이후 천 년이 넘는 동안 계급에 따른 차별, 성별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여겨 왔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상놈은 지엄하신 양반과 같지 않았고, 아녀자는 남편의 수종을 드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현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처럼 현실이라는 것은 마치 숙명처럼 한 인간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회의를 품음으로써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는 대상이다. 강의석씨 그리고 이 땅의 수많은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는 군대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사람의 생각에 대해 회의를 품고, 군대가 실제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인지, 혹시 군대가 있으므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현실에 도전한 것이다.

그러한 그들의 행동은 현실의 실체에 대해서 좀 더 가까이 접근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우리가 말하는 그 현실이라는 것은 특정한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은폐시킨다. 사람들은 평화를 유지한다는 현실적 목적 때문에 기꺼이 비용을 대가며 군대를 유지한다고 말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무기산업계와 석유업계와 같은 특정집단의 이익추구 때문에 군대가 존재하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우리는 북한의 군사력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주권침해 논란에도 미군의 주둔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평화에 대한 현실주의적 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현실’에 기반하여 군대 없이는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는데 군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군대와 평화에 관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평화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그런 사고는 본질적인 인류의 평화에 다가설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다.

2008년 10월 12일 일요일

건국 기념도 필요하나 그것이 해방보다 우선할 순 없다

그동안 주로 학계에서만 화제가 되던 건국기념일에 대한 논쟁이 지난 8월 정치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에까지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진영은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을 발표한 1948년을 기점으로 건국기념일을 정하는 것이 옳다며 지금의 8월 15일 광복절을 건국절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진보진영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것은 항일의 의미를 축소하고 훼손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역사적으로 건국기념일은 서유럽의 근대 민주주의 국가 형성 과정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유럽은 고대 로마제국이 붕괴된 이후 정치적으로는 봉건체제, 경제적으로는 장원체제에 의한 다원적 집합체가 형성되었다. 그 후 이러한 집합체 사회의 모순이 커지면서 부르주아를 중심으로 한 시민혁명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그러한 집합체를 하나로 통합하여 민족을 단위로 하는 근대 국가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건국기념일은 시민혁명에 의한 근대 국가의 수립을 기념하는 날로써 자리매김하게 된다.

건국기념일을 제정하자는 주장은 그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출발한다. 즉, 한국사에서 근대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이고,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듣고 어떤 이는 유럽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아시아 등 다른 세계에도 보편적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건국기념일이 민족을 단위로 한 최초의 국가를 기념하는 날이라면 유럽과 다르게 한국사에서는 단군을 부정한다 하더라도 그런 국가는 고대 시대부터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근대 국가를 민족 단위의 집합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바라본 것이다. 근대 국가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근대사회가 봉건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개인을 존중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은 근대적 의미의 국가로써, 봉건적 신분제로부터의 해방,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한 대다수 민중의 정치 참여 확대 등을 최초로 실현한 국가라는 점에서 충분히 역사적으로 기념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한국 보수진영의 건국기념일 제정 노력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금 건국기념일을 제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광복절을 건국기념일로 바꾸자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복은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건국에 비할만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 보수진영의 역사적 뿌리와 건국 초 그들이 보여준 모습을 상기할 때, 그들이 광복 대신 건국을 기념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의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려는 시도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해방일과 건국일이 8월 15일로 같은 이상, 이 날은 광복의 의미를 살리면서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참된 의미의 건국기념일이 된다. 민족 또는 민중의 해방 없이는 건국도 없기 때문이다. 건국기념일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해방보다 우선할 순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